루벤스의 작품인가? 내셔널 갤러리 그림의 진위성에 대한 새로운 의혹

루벤스의 작품인가? 내셔널 갤러리 그림의 진위성에 대한 새로운 의혹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 삼손과 데릴라가 피터 폴 루벤스의 작품이 아닐 가능성이 다시 제기됐다.

이 그림은 45년 전, 당시 최고가로 거래되며 17세기 플랑드르 거장 루벤스의 작품으로 인정받았지만, 최근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초반에 제작된 복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술사학자 유프로시니 독시아디스는 오는 3월,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열리는 강연과 신간을 통해 이 작품이 루벤스의 진품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녀의 책 NG6461: 가짜 내셔널 갤러리 루벤스는 3월 12일 출간되며, 강연 하루 전 공개된다.

독시아디스는 루벤스 특유의 유려한 붓터치와 역동적인 필법이 삼손과 데릴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루벤스 작품과의 차이점

이 그림은 구약성서의 이스라엘 영웅 삼손이 데릴라에게 배신당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루벤스가 1608~1609년경 앤트워프 후원자 니콜라스 로코스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독시아디스는 루벤스의 미네르바가 팍스를 마르스로부터 지킨다 속 푸토(천사)의 등과 삼손과 데릴라 속 비너스와 큐피드 조각상을 비교하며, “이것은 단순한 조악한 제작 수준이며, 17세기라면 용납될 수 없는 실패작”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녀는 삼손의 발가락이 잘려나간 점을 강조하며, 이는 루벤스의 기법과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차이점은 17세기 루벤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다른 동시대 복제 작품들과도 명확히 대비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삼손의 발가락은 야콥 마탐의 판화와 프란스 프랑켄 2세의 그림에서는 온전히 묘사되어 있다.

새로운 증거와 전문가들의 반응

독시아디스는 이 작품의 뒷면이 20세기 중후반에 합판(blockboard)으로 덧붙여졌다는 내셔널 갤러리의 설명도 반박했다. 그녀는 이미 고인이 된 미술 감정가 얀 보셀라에르스의 증언을 바탕으로, 1980년 작품이 판매되기 전 촬영된 오래된 사진을 공개했다. 해당 사진을 보면, 당시 그림이 액자에서 분리된 상태에서도 판넬(panel) 형태였으며, 이후에야 합판이 덧대어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술 보존 단체 아트워치 UK의 디렉터 마이클 데일리는 이 증거를 두고 “폭발적인 내용”이라며 “이 작품이 1980년 런던으로 옮겨올 당시까지 판넬 형태였다면, 대체 누가, 왜 이것을 깎아서 합판 위에 부착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한, 데일리는 그림이 1929년 독일 미술상이 매입한 기록을 확보했으며, 판매자는 브라질 출신 보존가 가스통 레비였다고 밝혔다. 레비는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의 마드리드 예술 그룹과 관계가 있었던 인물이다.

독시아디스는 마드리드의 소로야 박물관을 방문한 후, “처음 그림을 본 순간 NG6461(삼손과 데릴라의 내셔널 갤러리 등록번호)과 동일한 스타일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소로야와 그의 제자들은 19세기 예술 교육 방식에 따라 고전 명화들을 모사하는 훈련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루벤스의 잃어버린 원작을 복제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녀는 레비와 그의 동료들이 당시 남아 있던 루벤스 복제본을 참고해 작품을 재현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레비가 루벤스 복제본을 소장한 독일 뮌헨 박물관을 방문했고, 해당 박물관 근처에 거주했던 사실도 밝혀냈다.